Wuthering Heights
1. Wuthering Heights
에밀리 브론테의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폭풍의 언덕"이 배경. 황량한 영국 요크셔 지방의 바람 많이 부는 언덕에 지어진 집 이름이 Wuthering Heights. 발음은 워더링 하이츠.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이야기가 메인 플롯이지만, 운명, 사랑과 증오, 욕망과 복수, 신분과 부, 가문의 몰락과 파멸, 영혼과 화해 등으로 갈 데까지 밀어부친 막장 드라마로 그녀의 유일한 작품이지만 세계 3대 비극으로 꼽히는 수작.
2. 에밀리 브론테
흥미로운 점은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 그녀는 이 소설 전까지는 이렇다 할 특별한 작품활동이 없었다는 점. 사실 이후로도 없음. 전문적인 작가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훈련이나 당시 소설가 집단과 교류를 한 것도 없었기에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밀어부칠 수 있었냐는 의구심이 많음. 일부에서는 그래서 그녀가 쓴 것이 아니라는 의심까지.
3. 몰입과 단조로움
내 추측은 단조로움과 몰입이 그걸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 한가롭다 못해 외로움마저 느껴지는 시골 황무지에서의 삶은 도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닭의 깃털 색가지 깨닿게 하는 관찰력과 사고력을 주기 때문. 창의력은 몰입 후 휴식 시간에 나온다는 것이 최근 뇌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
4. The Adagio House
6개월째 머물고 있는 이 숙소가 "폭풍의 언덕"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됨. 지리적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한여름에도 세찬 바다바람이 불어오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이곳에서의 단조로운 삶이 타인의 마음 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까지 잘 느끼게 해주기 때문.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뭐든지 잘 보이는 법. 심지어 나 자신 속의 폭풍의 언덕도 관찰하고 그것으로부터도 독립된 사고가 가능할 정도. 에밀리 브론테도 역시 그러했을 것.
제주의 여러 주택들을 다녀보고 탐방을 하지만 이곳의 시공간이 참 맘에 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다가 잘 내려다 보이는 이른바 Crow's Nest이기 때문. 매일 눈뜨면 달라지는 바다와 하늘의 변주 속에서 오가는 요트, 크루즈, 낚시배, 제트보트 그리고 밤에는 환한 불을 밝히는 오징어잡이배까지 망원경과 육안으로 관찰하는 재미도 솔솔.
5. 폭염
예전 5년여 머물던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느꼈던 곰팡이 냄새 솔솔나는 열대지방 같은 여름과 달리 이번 여름이 다르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한라산에서 바닷가로 솟아오르는 용천수. 최근 발견한 예래동 논짓물은 모래사장은 없지만 용천수가 풀장을 이루어 바닷물과 파도로 뒤섞이는 독특한 장소. 어떤 호텔의 풀장도 이러한 장면은 만들어내지 못할 듯. 강원도 계곡물같은 차가움은 덤. 역시 생활공간이 좁은 곳에 한정될 때의 인식제한을 다시 느끼며 최근엔 강정해안도로의 저녁 산책 코스도 새로 발견. 한 낯의 열기를 식혀주는 세찬 바다 바람이 일품. 수월봉이 위치한 서쪽 노을해안로까지 가지 않아도 15분 거리에 이런 곳이 있었음을 새롭게 알게되어 아직도 제주의 새로움을 새삼 느끼기도.
강원도로 가지 않아도 여기에서 더위를 잘 이겨내고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겠다 싶어 내년 3월까지 8개월 연장해 제주에 머물기로 결정. 이곳 워더링 하이츠에서 좀더 깊은 깨달음이 있기를. 이곳에서 끝까지 밀어부칠 것. 에밀리처럼 그리고 Bayes' Theorem을 만든 Bayes처럼.
6. 영국의 언덕과 바람
영국은 북쪽의 스코틀랜드 외에는 특별히 산이랄게 없는 곳. 언덕이라고 해봐야 유아용 프로그램 텔레토비의 배경이 되는 정도의 높이가 대부분. 스코틀랜드는 산세가 꽤 깊어 로마가 당시 정복하지 못한 곳. 워더링 하이츠가 실제 있다면 그 모습은 생각만큼 높지 않을 것. 바람도 여기 아다지오보다는 덜 할 듯. 아다지오는 그덕에 모든 창문을 열어두면 시원하게 쿨링이 되어 에어컨 없이 숙면. 물론 바람이 없는 날은 할 수 없이 에어컨 신세. 지금까지 에어컨 켠 날은 몇 날 되지 않음.
이제 육지도 장마가 끝났으니 앞으로 한 달여간 극심한 폭염이 예상된다고 하니 건강관리에 만전을.